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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6

2024. 10. 10.

21년도에 개소하고서도 4년차. 개소 당시에만 해도 이 때쯤이면 어느정도 사무실이 마냥 돌아갈 줄 알았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개소한 사무실 중에서는 벌써 유명해져서 일이 많은 사무실도 있고, 여전히 나와 비슷하게 고군분투 하는 사무실도 있다. 작년 정도만 해도 조급증이 생겼다. 준공작이 쌓여가는 사무실과 잡지에 실리고 인터뷰를 하고 공모전에 당선되는 모습들과 전시회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개소하고 비슷한 동년배임에 나는 아직 자리도 못잡고 있는 모습. 마음이 바빠졌다. 공모전도 더 많이 참여해보고, 사람도 만나보고 다녔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생길리는 만무했다. 다행히 교육청 인력풀에 속하게 되어서 여러 초중고 학교들에 공간조성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무실 유지를 하고 있다. 간간히 나오는 공모전 입상 상금도 보탬이 된다. 그렇게 학교 작업 그리고 공모전을 반복하다 보니 목적성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본질은 무엇인가. 학교일을 처음 시작 했을 때는 사무실 유지의 목적으로만 사업을 바라봤던 것 같다. 건축이 아니기도 하고 인테리어 성격이 강한 내용이라 크게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 그래서 실내 공간조성의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학교일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당선되면 설계비도 많고 이름이 걸리는 공모에 좀 더 집중했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입선작이라도 올라가게 되었겠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잃고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메달린 건 아닌가. 공모전에 당선 되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베스트의 옵션이지만 50~100팀이 참여하는 곳에서 5위 안에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것 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학교에서 계약한 일은 실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결국 공간으로 완성 되는 프로젝트임을 4개 학교를 완성한 뒤에야 온전히 깨달았다. 건축을 하고 싶어서 공간 개선이라는 프로젝트는 너무 쉽게 본 건 아닌가. 지금 있는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는가. 설계비가 적다고 건축이 아니라고 최소한의 비중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걸까. 기본이 쌓이지 않고 유명해지고 일이 많아진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조급해지지 말자. 지금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 이걸 깨닫는데 4년이 걸렸다. 물론 빨리 자리 잡고 이름이 나면 좋을 것이고 지금도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큰 틀에서는 주어진 프로젝트와 공모전을 병행하겠지만, 일을 바라보는 자세와 조급해하지 않고 내 실력대로 평가 받는 것. 그것이 다만 천천히 가더라도 좋을 프로젝트를 쌓고 있었고 실력있는 사무실이 되어 나중에라도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상위 10%안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는 노릇이고 그 상위가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그리고 프로젝트의 크기와 내용에 상관없이 사무실과 인연을 맺고 나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곧 실력이 되고 밑거름이 될거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곧 완성될 두 학교와 시작할 두 학교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을 하고 있다. 결과물을 공개할 수 있는 퀄리티가 나올수 있도록.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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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5

2024. 3. 13.

모두들 건축경기가 어렵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 하고 있다. 

나로선 아직은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계속 있던 시절이 없어서 그런지 크게 다르지는 않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눈앞에 오기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현재 민간 프로젝트는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향산리 안마당집 주택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현재 착공 신고까지 완료한 후 대지 토목 공사를 마무리했지만, 대지로 진입하는 유일한 출입 도로 중 일부를 개인 소유의 땅이라는 이유로 무단 점유하고 파손한 일이 벌어져 건축주는 군청 여기저기 다니면서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황 도로로 지정되어 허가받은 건축 외에 다른 건축물까지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행위는 당연히 불법의 소지가 크지만 현실에서 해결 방법은 서로간의 협의나 소송 밖에 없는 듯 하고, 이런 상황에서 군청은 한발 빼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모로 금방 해결될 지 않을 것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면, 지금쯤 주택이 완성되어 presskit 과 2호 집에 대한 구상을 건축주와 함께 하고 있었을 시기이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건축주가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니 상황이 나아지기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

 

향산리 안마당집

 

향산리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사무실을 운영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2년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학교 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게 되어 지금까지 고등학교 두 곳, 초등학교 두 곳을 공간 기획 업무부터 실시 설계까지 하면서 사무실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네 개 학교를 하면서 실무 과정에서 많은 경험이 있지 않은 학교 시설에 대한 이해도와 교육청과 학교의 관계 그리고 교육청마다 진행되고 있는 공간 기획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경기도 교육청은 가장 큰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고마움과 동시에 사업비와 프로그램 운영 등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나온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기초로 지금은 울산 교육청의 다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올해는 이화중학교와 함께 공간기획업무를 계속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간이 종료된 서울시 교육청 공간기획가 인력풀에도 2년 연장해서 계속 이름을 계속해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경기도의 규모가 크기도 하거니와 매칭 시스템이 야생을 방불케 정글에 풀어놓는 방식이라 재빨리 눈치싸움과 학교와의 협의로 계약을 이끌어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처음 인력풀에 올라간 후 공간 기획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경험이다. 교육청에서 올해 공간기획프로젝트를 진행할 약 70~90개의 학교 리스트를 보내준다. 리스트 속에서 사업비가 너무 크거나(수의계약 범위 이상) 학교에 방문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거리가 너무 먼 곳을 제외하면 10~15 정도의 학교로 정리된다. 한 명의 공간기획가가 두 개 학교와 계약이 가능하므로 열심히 학교와 컨텍하여 선점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기업인 공간기획가는 여러모로 유리함을 가지게 된다. 계약 방식이 수의계약이므로 여성 기업은 계약 금액이 5천만원까지 가능하고, 일부 학교는 공간 기획 범위가 매우 커서 공간 기획 업무에 이어 실시설계까지 연장해서 맡기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여성기업을 찾게 된다. 공간기획가 인력풀에 여성기업은 한정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은 1년에 두개 학교를 맡게 되면 실시 설계까지 4~5천 짜리 프로젝트를 한 학교당 2개씩 연속적으로 가지게 되는 방식이다. 이럴 때는 여성과 남성이 무슨 차이를 가지게 되어서 이런 불합리함을 가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는 것만 남겨두려고 한다.

 

첫 해에는 경력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상황이라 여러 학교에 적극적으로 전화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면서 고색고와 권선고 두 학교와 공간 기획업무 및 실시설계까지 연장해서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공간 기획업무의 미숙함이나 실시설계 및 사업비 관리의 미숙함이 드러난 프로젝트였지만, 이 사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더 한정된 사업비, 적극적인 선생님과 비적극적인 선생님,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과 끌려온 학생과의 워크샵 등 내가 어떻게 공간기획 워크샵을 준비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결과물이 도출되며 그것은 전적으로 공간기획가의 의지에 달렸다고 느껴졌다. 첫 해에 공간기획 업무를 진행하면서 특히 아쉬웠던 것은 워크샵을 기획하고 아이들과 만나면서 재미있게 학교에 있으면 좋을 공간들을 구상해도 일부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그저 환경개선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어느새 그 분들을 설득하는 역할까지 공간기획가가 하고 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대한 동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교육청에서 맡아서 해주고 사후에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설문조사가 아니라 방문하고 지켜보면서 실질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완성된 사업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한 사업비가 너무나도 터무니 없기 때문에 10을 계획하고 나서 5를 완성하면 다행인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모든 난관을 빠져나왔다 싶을 때, 입찰로 참여한 시공 업체에 따라 공사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 되기도 했다. 기획업무에서 즐겁게 진행하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완성되면 불만과 안타까움이 공존하게 되면서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경험이었다.

 

두번째 해에는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초등학교 공간드림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학교와 전화하고 찾아뵙고 한 결과 두 학교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 확실히 다른 점은 학부모님들의 열성적인 참여의지와 선생님들도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학업 성취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즐겁고 다양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신축과 구축이라는 장소적인 다름도 두 개 학교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동력을 잃지 않고 진행 할 수 있는 즐거움 이었다. 다만 이 두개 학교 역시 실시 설계에 들어오면서 인테리어 및 가구 제작 경험의 부족함으로 인해 사업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나 많은 작업들이 변경되어 납품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완공되면 학교에 연락해 피드백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남기지 못했던 준공 사진을 필히 남겨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올해 벌써 세번째 학교 공간기획 업무를 울산의 이화중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청의 공간기획업무를 주로 하다가 울산 교육청과 작업을 하다보니 울산 교육청만의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울산은 10개 이하의 사업을 진행하고 올해는 5개 학교만 진행하다보니 각 학교에 집중 할 수 있는 인력이 총괄 기획가 아래 있었다. 경기도처럼 촉진자 4개월 실시설계 3개월 등 분리하여 발주하고, 촉진자는 학교와 실시설계는 각 지방교육청에서 계약을 맺게 되어 사업의 연속성을 공간기획자가 잡고 가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허공에 떠버리는 결과를 가지게 됨을 인지하고 공간기획가 및 실시설계자를 처음부터 이원화 시켜 두 건축가를 계약기간을 최종 공사가 끝나고 최종 발표회를 가지는 1년 프로젝트로 변경시켜 놓았다. 계약 하고선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크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움 난장, 모두가 모여 발표하는 중간 발표회 및 최종 발표회 등 여러차례 중간 과정에서 모임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보고 배우면서 궁극적으로는 학교 공간 기획 프로젝트가 그저 환경 개선이 아닌 다양한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임을 공간 기획자가 설득하지 않고 모두 다 함께 이해하는 방식을 만들어 둔 것 처럼 보였다. 나도 이번에 첫 참여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울산 이화중 공간기획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끼게 될 많은 것들과 학교 학생들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와 만나서 진행하게 될 워크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화중학교에선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나는 프로젝트이다.

 

학교 프로젝트들이 사무실 운영이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계속 학교 프로젝트를 주 업무로 맡아서 할 수는 없다. 학교 프로젝트 외 남는 시간에는 멈추지 않고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 공모전이라는 것이 과열되어 있기도 하고 그만큼 종류와 수도 많은 것이 실정이다. 그만큼 지금 공모전은 방향 설정이 잘 되어 기획된 공모전보다 공모전을 해야하는 규모이니 기획보고서와 지침을 대략 만들어서 자질 없는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는 형식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다. 요즘 생각은 차라리 공모전을 해야하는 설계비의 규모를 올리고 그 아래 공모전들은 수의계약이나 입찰의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또다른 자기네들의 밥벌이라 생각해서 부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해결해야하지만 말이다. 특히 각 지역 건축사들에게 적당한 규모의 수의계약이나 입찰의 기회가 열린다면 더욱 더 지역 실정을 잘 이해하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역 건축사들의 자질 문제는 지역의 일거리가 해결된다면 서울에 몰려 있는 실력 있는 건축사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는 지방의 한 공모전에 참여하여 낙선하였는데, 7인의 심사위원 중 아무도 건축 계획 전공자들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선 참으로 참담함을 느꼈다. 건축 설계안을 판단하는데 왜 인테리어, 건축 시공, 도시 계획, 친환경, 시청 주무관 등만 모여서 당선안을 뽑는지. 나는 왜 저런 사람들에게 심사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당선안을 납득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일게다. 심사위원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참여한 나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이런 공모전의 기획과 진행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화성시 공공계획가 일을 하면서 알게되었지만, 많아지는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채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건축 설계 전공자가 심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당연히 유명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신 분들이 심사위원에 있는게 가장 좋지만 인력풀이 그렇게까지 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건축 계획과 실무를 해보신 분들이 주도로 하는 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참여하는 심사위원들도 하루 심사비 받으며 앉아있다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도시, 동네에 만들어질 건물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과 논리 그리고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비록 내가 여기서 아무리 외쳐봐야 아무도 듣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험을 계기로 심사위원들의 프로필을 자세히 알아보고 아주 심사숙고해서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결국 당선안은 심사위원이 뽑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생각과 자질을 가진 분에게 심사 받고 싶은 것은 한달 넘게 계획해서 제출한 작업을 올바르게 평가받고 싶은 작은 소망일 뿐이다. 

 

살아봐요 장항 워케이션 - 나에겐 소중한 최근 낙선작

 

2024.03.13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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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4

2023. 10. 23.

감리, 감리, 또 감리.

 

건축 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에겐 민간일이 돌아가는 것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참여하고 있는 공모전들의 참여작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프로젝트가 사라지고 있어서 공모전 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무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참가하는 공모전들은 누구나 매력을 느낄만한 공모전들이었기 때문에 20~30팀은 참여했으나 최근에는 50~70팀 가량이 제출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들리는 소문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에서 주는 감리는 사무실 운영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된다. 서울시 감리자 목록에 이름을 올려둔지 1년쯤 되던 차에 다가구 신축 지정 감리를 1건 받았고, 최근에는 해체공사 감리를 1건 지정 받아 감리 업무를 보고 있다. 감리라는 것이 요즘에는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나 예전에 해체공사 사고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고 있어서 신축이든 해체든 지자체에서 더 많은 감시와 안전 점검 그리고 행정 서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따라오는 건 사고시 종이 조각처럼 날아가는 건축사 자격면허는 덤이다. 그래서 사무실 유지비용이 큰 문제가 없으면 사실상 감리라는 것은 안하는 것이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번다는 측면 외에는 크게 나에게 도움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우연히 좋은 설계사와 좋은 시공사를 만나서 수준 높은 설계도와 시공시에 도움이 될 지식을 얻게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누더기가 된 도면에 법규도 맞지 않는 설계 도면과 현장에서 자꾸 바꾸고 있는 건축주, 그리고 제대로 시공하지 않는 시공사를 컨트롤해야하는 일을 해야하는게 다반사다. 규모가 작은 현장은 비상주로 감리를 진행하게 되는데, 법적으로는 착공 전 현장점검, 기초 철근 배근, 중간층 철근 배근, 지붕층 철근 배근, 최종 종료 점검 등 4~5회만 방문하여 검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요즈음 상황도 그렇고 실제로는 일주일에 최소 1회 이상은 방문하여 현장 체크 도면 검토 등을 진행하고, 행정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처음 감리를 지정 받았을 땐, 사무실 운영 비용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꽤나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곧 따라오는 서류 검토와 도면 검토 그리고 책임 소재는 이 비용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된다. 지금 비용 산정은 정말 법적인 방문 검사만 진행했을 때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해체감리는 아주 약간 상황이 괜찮다. 비록 상주해야하는 시간적 어려움은 있지만 신축에 비해 공기도 짧을 뿐더러 해체계획서상 대로 진행만 된다면, 어려움 없이 진행되며 비용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신축보다 위험성은 훨씬 높지만 말이다. 무사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공사가 마무리 되기를 바라고 있다.

 

큰 장비가 건물을 부수는 과정은 위험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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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3

2023. 6. 13.

공모전 이야기.

 23년도 들어와서 5~6개의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검토하거나 참가 접수 후 제출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5월이 되어서야 23년도 처음으로 하나 제출을 완료하고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동안은 기간이 맞지 않거나, 프로그램이 생소하거나, 심사위원이 우리의 방향과 맞지 않거나, 제출물이 과도하게 많은 공모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고 개업 초기에 일이 하나도 없을 때와는 다르게 작게나마 주택 건과 학교 건등의 일들이 작게 할일이 쌓이면서 조금은 에너지가 떨어진 것도 있었다. BM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바쁜 것들은 또다른 스케쥴의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즘 개인적으로 느끼는 점은 21, 22년도에 비해서 공모전의 질이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공모전의 개최 수는 훨씬 늘어난 것 같으나 질적으로는 점점 떨어지고, 비슷한 당선안들과 큰 생각이 보이지 않는 공모전들의 숫자도 그 만큼 증가한 것 같다. 그러면서 반대로 심사위원이 좋거나 신경을 쓴 느낌이 나는 공모전들은 참가자들이 기형적으로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요즘의 건축 경기가 좋지 않아 민간일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1~2억 설계비의 공모전에 50~60팀이 몰리는 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 만큼 실력과 노력으로 자신의 제출안이 공정하게 심사받을 수 있는 공모전의 수는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성시 공공계획가 활동을 하면서 화성시의 한 공모전에 운영위원 및 기술심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다. 항상 참가만 하던 입장에서 공모전을 운영하고, 심사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현실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화성시는 건축 총괄 건축가의 철학 아래 공모전이 공정하고 흥행할 수 있도록 형식의 기틀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출물의 간소화, 심사위원의 공정성, 심사의 개방성, 지침서의 방향의 선명함 등 공모전을 잘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총괄건축가, 공공건축가, 담당주무관등 모두 다 함께 하고 있었고, 그 분위기 속에서 나도 참가자의 입장에서 개선했으면 한 것들을 이번 공모전에 꽤 담아내어 지침서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에 힘을 보탰다. 운영위원으로서 지침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현실적인 문제도 인식하게 되었다. 우선 심사위원분들의 풀이 한계라는 점이었다. 실력과 공정성을 모두 갖춘 심사위원들의 숫자도 한계지만, 그 분들이 1년에 소화할 수 있는 심사 역시 한계가 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분을 모셔야 하지만 인사도 한정적이고 또 검증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기술 심사에 참여하여 50여개의 작품들을 지침과 법규 위반등 기계적인 심사만 하는데도 하루종일 소요되는 힘든 일인데, 하물며 토론과 심사를 하여 당선안을 뽑아내는 일은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다같이 토론하고 투표하여 골라낸 당선작 및 입선작들이 낙선된 안 보다 완벽하다고는 생각치 않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모두 중계가 되고 문제점을 서로 이야기 하는 과정이야 말로 좋은 당선작 나아가 좋은 공공 건축물이 생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기회와 시간만 허락한다면 화성시 공공계획가 활동하는 임기동안 최대한 많은 공모전에 운영위든 기술위든 참가하려고 하고 있다. 화성시에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데 작게나마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가자들의 크고 작은 불만은 있겠지만, 점점 더 제대로 틀이 잡힌 화성시 공모전이 될 수 있도록 활동해보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가하려는 공모전들에 아쉬운 점들이 계속 눈에 보인다. 우선 심사의 방식이 수우미양가 처럼 점수제로 한다든지, 토론 없이 투표제로만 심사하는 심사위원장 등을 보고 있으면, 과연 저 방식이 공정하게 당선작을 뽑아내고 충분히 안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심사를 하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많은 경험과 학식을 가지고 있으시겠지만, 공모전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최소 한달 이상 그 대지와 프로그램에 대해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심사위원들은 길어야 일주일 전 짧으면 당일에 현장에 방문하여 지침서와 대지를 분석하고 바로 결과물을 보게 된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토론과 안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심사위원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지점이나 안에 대해서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함에도 점수제나 토론 없는 투표제로 이루어지는 심사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어떤 공모전은 대지가 가진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점수를 매겨 당선안이 선정되는 과정을 본 적도 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늘어나는 공모전에 비해 오히려 참가하고 싶은 공모전은 줄어드는 추세가 아닌가 싶다.

 

 최근에 서울시에서는 기획 단계 부터 공모를 한다며 여의도 세종문화회관에 새로운 공모 방식을 제시했다. 그 동안 기획안을 기반으로 공사비와 설계비가 책정되면서 공모전 당선작의 디자인 현실화에 공사비 한계를 인식하고 만들어진 방식인 듯 하다. 큰 방향성은 이해되기도 하나 만약, 기획 단계에서 만약 과도한 디자인이 당선 될 경우 천문학적인 공사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내가 참여할 수 있을 만한 규모가 아니기에, 그저 제3자의 입장에서 진행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짧게나마 학교 이야기.

 경기도 교육청에서 올해는 고교학점제 공간조성과 더불어 초,중학교의 공간드림이라는 사업을 추가로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의 공간 개선에 관심이 생겼다. 입시와 학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고등학교와는 달리 초등학교는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을거란 기대감도 한 몫 했다. 그리하여 수원의 정자초등학교와 평택의 고덕초등학교 두 학교와 인연이 되어 사용자 참여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이 두 학교는 극과 극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정자초는 오래된 학교로서 그 동안 여기저기 고쳐진 흔적과 낡은 시설에 비해 특이하고 매력적인 중심 계단실을 가지고 있었고, 고덕초는 신축학교로서 깨끗한 시설과 명쾌한 동선으로 만들어졌으나 미디어스페이스로 비워진 공간은 예상외로 차가워 보였다.

 사용자 참여설계라는 방식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 일반적으로 계획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우리가 몇몇 사람들의 원하는 바를 듣고 디자인을 만들어가면 그 이후 협의해나가는 과정이 기존 방식이었다면, 실제 사용자들에게 처음부터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단계부터 그 사람들이 계획에 함께 참여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는 새로운 방식의 설계 방향인 것 같다. 두 학교 모두 새로운 공간에 대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들과 사용자들의 참여도는 높았다. 무엇보다 두 학교 다 교실 공간의 개선보다 학교 내의 유휴공간을 개선하려는 내용이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좋은 공간에서 놀고, 쉬고, 뛰어다닐 수 있을지 재미있게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BM이 한국으로 정착하면서 함께 이 프로젝트를 꾸려가고 있어서 작년에 혼자 고민하던 일들이 좀 더 완성도 있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프로젝트로 완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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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2

2023. 2. 10.

춘천주택을 완공 후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presskit을 배포했다. 직접 촬영한 준공 이미지와 함께 간단한 설명글과 설계 의도를 서술해서 온라인 매체에 보냈고, 다행히 몇몇 온라인 매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준공 이미지와 사무소 이름을 실어주었다. 온라인 매체의 장점은 지면의 한도가 없다는 것과 SNS를 통하여 불특정 구독자에게 작업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맞추어 몇개 오프라인 잡지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력물로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우연히 잡지를 구매하여 보셨던 한 건축주께서 인연이 되어 새로운 주택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소를 처음 오픈했을 때 상상했던 운영방식이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고 그 작업을 보고서 다음 작업이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였다. 운이 좋게도 때마침 중정형 주택을 꿈꾸시던 건축주께서 춘천 주택이 실린 잡지를 구매하여 보셨고, 설계를 맡겨주시는 인연이 되었다.

 

울산 대지는 울산시에서 조금 떨어진 언양읍에 위치하고 있다. 울산 ktx 정차역과 차로 10분 거리 남짓에 있는 대지는 도심지에서는 2~3분 거리에 있었고, 3~6m폭을 가진 현황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300 미터 정도 오르면 나타난다. 큰 하나의 필지로 이루어진 대지 일부에는 매화나무를 일정 간격으로 심어두셔서 그 부분은 최근에 과수원 지목으로 변경되어 평탄화 되어 있었다. 산의 중턱 쯤 골과 골 사이에 위치하여 양 옆으로는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고, 서남쪽으로 틔인 뷰로는 멀리 영축산과 신불산 자락이 구비구비 장관으로 펼쳐진 곳이었다. 

건축주는 자연이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택으로서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동물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주택을 생각하며 중정형 주택을 꿈꾸고 계셨다. 자연이 좋다고 넓은 마당을 전면에 둔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에는 취약해지는 단점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선 계획을 시작했다. 전면에 펼쳐진 산맥의 장관과 매화나무 그리고 가족들이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폐쇄된 중정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 같다.

 

건축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어려운 자연적 조건들이 있는 대지가 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대도시 지구단위계획에서 만들어진 정방형의 대지들도 그 나름대로의 조건들이 있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규칙에 따르면서 어떻게 원하는 주택을 구성할 수 있을지 재미있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 주택이 완성되면 작업을 보고 또다른 연락이 오게 되는 선순환의 작업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 방향을 향해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되리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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