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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5

2024. 3. 13.

모두들 건축경기가 어렵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 하고 있다. 

나로선 아직은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계속 있던 시절이 없어서 그런지 크게 다르지는 않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눈앞에 오기도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현재 민간 프로젝트는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향산리 안마당집 주택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현재 착공 신고까지 완료한 후 대지 토목 공사를 마무리했지만, 대지로 진입하는 유일한 출입 도로 중 일부를 개인 소유의 땅이라는 이유로 무단 점유하고 파손한 일이 벌어져 건축주는 군청 여기저기 다니면서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황 도로로 지정되어 허가받은 건축 외에 다른 건축물까지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행위는 당연히 불법의 소지가 크지만 현실에서 해결 방법은 서로간의 협의나 소송 밖에 없는 듯 하고, 이런 상황에서 군청은 한발 빼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모로 금방 해결될 지 않을 것 같은 상황으로 보인다.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면, 지금쯤 주택이 완성되어 presskit 과 2호 집에 대한 구상을 건축주와 함께 하고 있었을 시기이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건축주가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니 상황이 나아지기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다.

 

향산리 안마당집

 

향산리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사무실을 운영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2년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학교 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게 되어 지금까지 고등학교 두 곳, 초등학교 두 곳을 공간 기획 업무부터 실시 설계까지 하면서 사무실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네 개 학교를 하면서 실무 과정에서 많은 경험이 있지 않은 학교 시설에 대한 이해도와 교육청과 학교의 관계 그리고 교육청마다 진행되고 있는 공간 기획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경기도 교육청은 가장 큰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고마움과 동시에 사업비와 프로그램 운영 등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나온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기초로 지금은 울산 교육청의 다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올해는 이화중학교와 함께 공간기획업무를 계속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간이 종료된 서울시 교육청 공간기획가 인력풀에도 2년 연장해서 계속 이름을 계속해서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경기도의 규모가 크기도 하거니와 매칭 시스템이 야생을 방불케 정글에 풀어놓는 방식이라 재빨리 눈치싸움과 학교와의 협의로 계약을 이끌어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처음 인력풀에 올라간 후 공간 기획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의 경험이다. 교육청에서 올해 공간기획프로젝트를 진행할 약 70~90개의 학교 리스트를 보내준다. 리스트 속에서 사업비가 너무 크거나(수의계약 범위 이상) 학교에 방문할 일이 많기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거리가 너무 먼 곳을 제외하면 10~15 정도의 학교로 정리된다. 한 명의 공간기획가가 두 개 학교와 계약이 가능하므로 열심히 학교와 컨텍하여 선점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 기업인 공간기획가는 여러모로 유리함을 가지게 된다. 계약 방식이 수의계약이므로 여성 기업은 계약 금액이 5천만원까지 가능하고, 일부 학교는 공간 기획 범위가 매우 커서 공간 기획 업무에 이어 실시설계까지 연장해서 맡기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여성기업을 찾게 된다. 공간기획가 인력풀에 여성기업은 한정적으로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은 1년에 두개 학교를 맡게 되면 실시 설계까지 4~5천 짜리 프로젝트를 한 학교당 2개씩 연속적으로 가지게 되는 방식이다. 이럴 때는 여성과 남성이 무슨 차이를 가지게 되어서 이런 불합리함을 가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는 것만 남겨두려고 한다.

 

첫 해에는 경력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상황이라 여러 학교에 적극적으로 전화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면서 고색고와 권선고 두 학교와 공간 기획업무 및 실시설계까지 연장해서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공간 기획업무의 미숙함이나 실시설계 및 사업비 관리의 미숙함이 드러난 프로젝트였지만, 이 사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더 한정된 사업비, 적극적인 선생님과 비적극적인 선생님, 즐겁게 참여하는 학생과 끌려온 학생과의 워크샵 등 내가 어떻게 공간기획 워크샵을 준비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결과물이 도출되며 그것은 전적으로 공간기획가의 의지에 달렸다고 느껴졌다. 첫 해에 공간기획 업무를 진행하면서 특히 아쉬웠던 것은 워크샵을 기획하고 아이들과 만나면서 재미있게 학교에 있으면 좋을 공간들을 구상해도 일부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그저 환경개선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어느새 그 분들을 설득하는 역할까지 공간기획가가 하고 있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대한 동력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교육청에서 맡아서 해주고 사후에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설문조사가 아니라 방문하고 지켜보면서 실질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완성된 사업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한 사업비가 너무나도 터무니 없기 때문에 10을 계획하고 나서 5를 완성하면 다행인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모든 난관을 빠져나왔다 싶을 때, 입찰로 참여한 시공 업체에 따라 공사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 되기도 했다. 기획업무에서 즐겁게 진행하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완성되면 불만과 안타까움이 공존하게 되면서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경험이었다.

 

두번째 해에는 좀 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초등학교 공간드림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학교와 전화하고 찾아뵙고 한 결과 두 학교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와 확실히 다른 점은 학부모님들의 열성적인 참여의지와 선생님들도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학업 성취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즐겁고 다양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신축과 구축이라는 장소적인 다름도 두 개 학교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동력을 잃지 않고 진행 할 수 있는 즐거움 이었다. 다만 이 두개 학교 역시 실시 설계에 들어오면서 인테리어 및 가구 제작 경험의 부족함으로 인해 사업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나 많은 작업들이 변경되어 납품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완공되면 학교에 연락해 피드백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남기지 못했던 준공 사진을 필히 남겨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올해 벌써 세번째 학교 공간기획 업무를 울산의 이화중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경기도 교육청의 공간기획업무를 주로 하다가 울산 교육청과 작업을 하다보니 울산 교육청만의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우선 울산은 10개 이하의 사업을 진행하고 올해는 5개 학교만 진행하다보니 각 학교에 집중 할 수 있는 인력이 총괄 기획가 아래 있었다. 경기도처럼 촉진자 4개월 실시설계 3개월 등 분리하여 발주하고, 촉진자는 학교와 실시설계는 각 지방교육청에서 계약을 맺게 되어 사업의 연속성을 공간기획자가 잡고 가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허공에 떠버리는 결과를 가지게 됨을 인지하고 공간기획가 및 실시설계자를 처음부터 이원화 시켜 두 건축가를 계약기간을 최종 공사가 끝나고 최종 발표회를 가지는 1년 프로젝트로 변경시켜 놓았다. 계약 하고선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크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움 난장, 모두가 모여 발표하는 중간 발표회 및 최종 발표회 등 여러차례 중간 과정에서 모임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보고 배우면서 궁극적으로는 학교 공간 기획 프로젝트가 그저 환경 개선이 아닌 다양한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임을 공간 기획자가 설득하지 않고 모두 다 함께 이해하는 방식을 만들어 둔 것 처럼 보였다. 나도 이번에 첫 참여라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울산 이화중 공간기획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끼게 될 많은 것들과 학교 학생들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와 만나서 진행하게 될 워크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화중학교에선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나는 프로젝트이다.

 

학교 프로젝트들이 사무실 운영이 도움이 된다고는 하나 계속 학교 프로젝트를 주 업무로 맡아서 할 수는 없다. 학교 프로젝트 외 남는 시간에는 멈추지 않고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 공모전이라는 것이 과열되어 있기도 하고 그만큼 종류와 수도 많은 것이 실정이다. 그만큼 지금 공모전은 방향 설정이 잘 되어 기획된 공모전보다 공모전을 해야하는 규모이니 기획보고서와 지침을 대략 만들어서 자질 없는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는 형식이 훨씬 더 많아진 것 같다. 요즘 생각은 차라리 공모전을 해야하는 설계비의 규모를 올리고 그 아래 공모전들은 수의계약이나 입찰의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또다른 자기네들의 밥벌이라 생각해서 부패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해결해야하지만 말이다. 특히 각 지역 건축사들에게 적당한 규모의 수의계약이나 입찰의 기회가 열린다면 더욱 더 지역 실정을 잘 이해하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지역 건축사들의 자질 문제는 지역의 일거리가 해결된다면 서울에 몰려 있는 실력 있는 건축사가 지역으로 퍼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에는 지방의 한 공모전에 참여하여 낙선하였는데, 7인의 심사위원 중 아무도 건축 계획 전공자들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선 참으로 참담함을 느꼈다. 건축 설계안을 판단하는데 왜 인테리어, 건축 시공, 도시 계획, 친환경, 시청 주무관 등만 모여서 당선안을 뽑는지. 나는 왜 저런 사람들에게 심사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당선안을 납득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일게다. 심사위원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참여한 나의 문제일 수 있겠지만, 이런 공모전의 기획과 진행은 더이상 없었으면 한다. 화성시 공공계획가 일을 하면서 알게되었지만, 많아지는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채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건축 설계 전공자가 심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당연히 유명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신 분들이 심사위원에 있는게 가장 좋지만 인력풀이 그렇게까지 되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건축 계획과 실무를 해보신 분들이 주도로 하는 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참여하는 심사위원들도 하루 심사비 받으며 앉아있다 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도시, 동네에 만들어질 건물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과 논리 그리고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비록 내가 여기서 아무리 외쳐봐야 아무도 듣지 않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경험을 계기로 심사위원들의 프로필을 자세히 알아보고 아주 심사숙고해서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결국 당선안은 심사위원이 뽑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생각과 자질을 가진 분에게 심사 받고 싶은 것은 한달 넘게 계획해서 제출한 작업을 올바르게 평가받고 싶은 작은 소망일 뿐이다. 

 

살아봐요 장항 워케이션 - 나에겐 소중한 최근 낙선작

 

2024.03.13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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