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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5

2021. 7. 8.


한 달 남짓,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무실을 구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무실을 전대했다. 사무소를 이미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직원도 한 명 있기도 하고 나보다는 훨씬 자금력에 여유가 있기에, 그 친구가 사무실을 구하는 곳에 한두 번 의견을 보태는 정도로 별다른 수고스러움 없이 사무실을 정하게 되었다. 각자 살고 있는 집에서 친구와 내가 적당히 출근할 수 있는 위치로 자연스럽게 신도림과 영등포가 후보로 떠올랐고, 결론적으로는 영등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영등포는 전철 타면서 스쳐 지나간 기억만 있는 지역이라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인상을 많이 받았다. 구도심의 흔적과 새로 개발된 구역의 경계가 아주 명확하면서도 금방 흐려지기 일쑤였다.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신세계 백화점과 영등포역까지 연결 통로는 어느 멋진 신도시처럼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지만, 바로 옆 블럭은 오래된 모텔과 음식점들 그리고 곧 영등포 시장으로 연결되며 임대가 붙어있는 건물들이 큰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죽어있는 도시는 아니라 타임스퀘어는 타임스퀘어대로, 영등포 시장은 시장대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영등포역에서 영등포시장역으로 걸어가는 코스가 주로 이용하게 되는 출근길이 될 것 같은데, 이 지역의 일상을 매일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다.

두 번째, 대출 신청을 하다.
사무실을 계약하자마자 급했던 대출을 신청하러 갔다. 신용보증기금에 연락했더니 영등포지점을 알려줬고, 친절한 팀장님과 무사히 제출까진 완료했다. 커다란 사건은 없었지만, 만들어져 있는 양식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조업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식에 건축사사무소의 내용을 넣는다는 것. 입사 준비할 때부터 설계사무소들은 정해진 양식보다 각자 포트폴리오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빈칸이 무슨 내용을 채워야 하는지 블로그를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접수되었고, 지금은 승인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이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할지 자금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법인 승인을 받다.
대출을 신청하고 나니 신용보증기금에서는 법인 설립은 이제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듣고선, 곧바로 법인 설립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세무서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서류 맞춰서 냈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신청과 설립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행정능력의 IT화는 정말 칭찬할 만하다 싶었다. 각 종 블로그에 설립에 관한 상세한 내용들이 잘 설명되어 있었고, 상담사에 연락하면 친절하게 아주 잘 알려주신다. 설립 신청하면서 무서웠던 점은, 신청 페이지에서 단계를 하나씩 진행하면서 임시저장을 할 수 있는데, 작성 중에 상담사가 전화가 걸려온 일이다. 순간 내가 신청을 잘못해버린 줄 알았지만, 상담사가 작성 중인 내용 중에 오류를 미리 발견해서 수정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이 모든 걸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걸 안 순간 임시 저장 버튼이 무서워 보였다. 아무튼 신청서 제출, 수수료 납부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 법인 설립이 완료되었고, 등기부등본이 출력되었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으니 이제 잘 키워서 세상에 내어놓아야겠다. 이제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 사업자등록신고, 법인 통장 개설 등의 험난한 일들이 남았지만. 하나씩 되어가고 있음에 큰 걱정은 없이 지나가고 있다.

네 번째, 진행하던 공모전을 포기하다.
때때로 욕심이 과하면, 하나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직원으로 출근하지 않고, 회사 설립 준비를 하면서 그 사이에 공모전을 하나 진행하려고 했지만, 나도 생각보다 작업할 시간이 나질 않고 bm 역시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계약까지 성사되며 갑자기 다들 바빠졌다. 이 참에 제대로 사무실을 정리하고선 새로이 나오는 공모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 포기하게 되는 순간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의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편히 접기로 했다. 연말에 마감하는 공모전을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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