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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1

2022. 11. 2.

최근에는 학교 작업에 집중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고교학점제 사용자 참여설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두 학교 중에 한 곳은 공간조성사업 외의 시설비용 3천만원을 올해 안에 사용해야 한다며 교실 1개를 우선 계획해달라고 했다. 무려 올해 안에 완공해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해당 교실은 공간조성사업에 포함하는 다른 교실들과 같은 복도를 공유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올해 공사를 하더라도 디자인 컨셉을 맞춰서  계획해야하는 것이 중요했다. 계획 내용은 일반 교실을 AI 창작실로 변경하고, 실 사이즈도 0.5칸 늘려야했다. 기존에 지어진 학교가 대부분 일정 모듈을 가지고 반복된 공간구성을 만들어내는 것에 착안하여 복도 벽을 300mm 단위 모듈로 나누어 문, 창과 벽 등으로 나누어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듈들이 공간조성사업을 통해 다른 교실로 확대 되면서 같은 디자인 언어 계획을 가짐과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재미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것 같다. 인테리어 업무는 건축과는 또다른 디테일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건축에서도 10mm 때문에 고민하지만 인테리어에서의 10mm는 건축에서의 고민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실제로 시공할 때도 꼭 현장에 나가봐서 그 차이가 유의미한 차이인지 그저 나의 느낌의 차이인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인테리어도 건축처럼 디자인 해보고자 했으나 교장 선생님의 비경제적인 요소 배제라는 완강함으로 인해 설득의 실패로 끝났다. 자신만의 관점을 뚜렷히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것에는 아직 내 실력이 충분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추고선 공간조성사업 영역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서 다시 시도 해보려고 한다. 내심 마음 속으로의 불안감은 존재한다. 인테리어 업무를 거의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의 공사비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정확히 안되기 때문이다. 재료와 시공법이 천차만별에다가 가격도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크게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레퍼런스 도면들의 퀄리티와 시공비가 적절한지 끊임없이 묻고 현장에 맞겠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이것도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지식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오늘 글을 시작한건 이 블로그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라고 적혀 있지만, 한번씩은 다른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서이다. 이번에는 음악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갑자기?)

나에게 다시 태어나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음악을 만들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음악을 부르는 사람이 참으로 부럽다. 나는 음악에 대한 재능은 없기에 헤비 리스너로서 하는 말이지만.

어렸을 적 부터 Rock kid 였던 나는 밴드 중심의 음악을 좋아하고 지금도 즐겨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일렉트로닉, 시티팝, 아이돌 음악까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을 즐기지만 다른 장르를 듣다가 결국엔 다시 밴드 음악으로 돌아오곤 한다. 글과는 다르게 음악이라는 것은 때때로 현실을 살아가면서 사라진 몽글몽글한 그 때의 냄새와 분위기를 다시금 되살려주는 신기한 예술인 것 같다. 어릴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광팬인 radiohead의 노래가 가끔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올 때 마다 처음 들었던 앨범 kid A 의 놀라움이 되살아나곤 한다. r.a.t.m, mr.big, oasis, sigur ros, muse, deftones, linkinpark, r.h.c.p, korn, led zeppelin, nirvana, queen, yo la tango, 들국화, 산울림, 아폴로18, 언니네이발관, 트램폴린, 허클베리핀, 넬, 크라잉넛, 국카스텐 등 그 시절마다 들었던 음악들은 나에겐 여전히 살아있는 음악들이다. 물론 여전히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하는 밴드도 있지만, 요즘 대세 음악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활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들 밴드 음악의 힘은 라이브에서 들어난다. 출중한 보컬이나 음악성이 뛰어난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들고 다시 어린 시절의 나에게로 되돌려 주는 음악은 라이브 밴드 공연만한 것이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길어졌다. 건축도 그러할 수 있을까. 

욕망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계획한 건물이나 공간에서 다른 공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자기만의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계획한 공간들의 아이덴디티가 될 수 있을까. 형태적으로 특이할 수도 있지만, 형태에 집중하기 보다는 빛의 흐름과 공기의 분위기 등이 만들어내는 경험을 주고 싶다. 그것이 라이브 밴드 공연에서 내가 느꼈던 rock 음악의 힘에 매력을 느낀 것과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느끼고 공감한 감정은 그 곳에 갔을 때 바로 되살아나는 것 처럼 말이다.

 

욕심만 내지말고 부단한 건축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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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0

2022. 9. 22.

최근에는 연달아 공모전에 낙선하면서 조금은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지내고 있다. 세세하게 따져보면, 운이 안좋은 경우도 있었고, 심사위원들의 생각하는 방향과 아예 달라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2차 발표 대상자인 5위안에 들지 못하고 1차 6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발표를 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올해는 현상 공모, 제안 공모를 통틀어 6번 정도의 공모에 참여했다. 그 사이에 지역 공모의 카르텔을 느껴보기도 했고, 잘하시는 분들이 당선되는 것들을 보여 배움의 자세를 가지기도 했다. 꾸준함.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으면 좋은 성과가 나길 기대하면서, 올해 마지막에 마감하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민간일이 들어오지 않는 한, 올해는 1~2개 정도의 공모를 더 하게 될 것 같고 내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공모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작년에 시작한 첫 프로젝트인 주택이 6월 말 완공 되어 지루한 장마철을 보낸 뒤 7월 중순에 준공 사진을 직접 촬영하고 왔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촬영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학 때 사진 동아리 활동하며 사진을 찍어봤노라고 되뇌었지만, 그 동안 안찍은 세월도 있거니와 건축물 사진은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설계하며 수없이 돌려봤던 3D를 기억삼아 그 때 좋아했던 건물의 각도와 의도했던 공간이 잘 들어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었고, 프로사진사 사진에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는 어느정도 남길만한 사진을 담아왔다. 전문 프로 사진가들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첫 작업인 만큼 스스로 준공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던 욕심도 한 몫 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건축주는 신경 안쓰실 정도의 소소한 지점들이 스스로에게 아쉬운 것으로 보이고, 그 지점들을 짚어 보면서 또 한단계 발전하는 시간을 가진 듯 하다. 앞으로 준공 될 건물의 사진도 직접 찍을지 작가에게 맡길지는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가에게 맡기더라도 개인적으로 간직할 사진을 직접 따로 촬영하려고 한다. 작가도 미처 알지 못한 나의 시선이 있고, 촬영하면서 깨닫는 여러 지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날 쯤에 건축주가 오셔서 바베큐와 함께 저녁시간을 가졌다. 몇가지 아쉬운 지점도 이야기 해주셨지만, 소소한 것들이라며 아주 만족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건축 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집을 설계하고 지어지고, 그리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것보다 뿌듯한 일이 있을까. 건축주는 자신이 센스가 떨어진다며 건물의 디자인을 헤칠까봐 함부로 무엇을 못하신다고 하신다. 나의 디자인 의도를 찾아보시려고 하고 헤치지 않으시려고 생각해주셔서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이제는 건축주께서 자기만의 느낌이로 이 곳을 자유롭게 망가뜨려보시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나의 의도가 많았지만, 살아가시면서 자유롭게 꾸미고 붙이고 하면 그 때 온전히 건축주의 집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씀드렸다.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집을 몇 년뒤에 보고 싶어 다시 초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날은 밝은 슈퍼문이 떠오른 밤이었다.

건물 촬영을 마치고는 사진 정리와 보정을 거친 뒤에 간단한 설명글과 함께 presskit을 만들어 다수의 국내외 온라인 매거진에 홍보차 보냈다. 다행히 에이플랫폼, 브리크매거진, 아키타이저 등에 작업이 게시물로 올라갔고, 사무실의 이름을 대중에게는 처음 선보일 수 있었다. 준공 작업들이 쌓이면 나의 작업들에서 신뢰를 받은 좋은 인연들이 맺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LH 청신호 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꿈담 건축가, 경기도교육청 공간 기획가.

지금 맡고 있는 여러 역할들이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무소는 포트폴리오에 준공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력풀 리스트에 올라가 있더라도 다른 훌륭하신 이력을 가진 분들 사이에서 나에게까지 연락오는 일은 드물었다. 다행히 경기도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고교학점제 공간 기획 사업에서는 72개교 56명의 공간 기획가에게 계약의 기회를 열어주었고, 서울시 교육청과는 달리 학교와 직접 소통하여 계약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별다른 학교 작업이 없는 나로서는 가만히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라 집에서 가까운 몇 개 학교에 연락하여 젊은 에너지로 잘 진행해보겠다고 어필한 후 미팅을 진행했다. 다행히 좋게 봐주었던 탓일까, 2개 학교와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고, 올해 말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워크샵 등을 통해서 학교 공간 재구성을 진행하고, 잘 진행된다면 실시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학교 작업등이 쌓이면 또 비슷한 사업을 진행 할 때는 좀 더 계약을 성사하기에 수월할거라 기대한다. 현장 미팅에서는 각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워크샵 등을 통해서 학생들과의 만남도 기대가 된다. 좋은 계획안으로 내가 맡은 학교들의 공간이 좀 더 풍부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학교 설계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내년 여름에는 준공 사진을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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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9

2022. 5. 10.

 독립하고 나면 가장 어색한 단어는 나를 부르는 주위의 호칭이다. 

그동안 불렸던 호칭들을 되돌아 보면, 대형 사무실에서 '사원'이 시작점이었고, 아뜰리에 사무소로 옮긴 후에는 '대리' , '팀장' , '실장' , '미스터 박(?)' 을 오고 가며 사무실을 옮길 때 마다 매번 다르게 불렸다. 사무실 마다 직급의 체계가 있고 불리는 규칙이 있으니 그런 호칭은 어떻게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게 여러 호칭으로 불리다가 독립을 하고 나니 나의 직급은 명확치 않고 여러가지로 불려지고 있다.

 우선 거의 대부분은 나를 '소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건축사사무소'라는 명칭이 '소'로 끝나기 때문에 소장이 평범하게 불리는 듯 하다. 나도 대부분 아뜰리에 대표님들을 소장님이라고 지칭 했었고, 그것이 업계 표준 같은 인식이 있다. 두번째로 많이 불리는 명칭은 '건축사' 라는 명칭이다. 건축주분이나 공무원 또는 처음 만나는 일반 분들이 주로 건축사라고 나를 부르곤 한다. 건축사라는 자격증을 정확히 알지 못하시는 분이 대부분이나 설계사무소를 방문하면서 설계와 건축사의 존재를 이해하시고서는 비로소 아무개 건축사님 이라고 부르시곤 한다. 물론 그 중에 '건축가'로 부르시는 분도 계신다. '사'로 끝나느냐 '가'로 끝나느냐는 '사'는 자격을 가진 사람, '가'는 자격의 유무보단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하는 사람 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나는 그런 용어들이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 스스로 나는 건축가요 하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건축 설계 분야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건축'사'나 건축'가'나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법적으로는 '건축가'란 호칭은 건축사법 12조에 따라 유사명칭 사용금지 조항에 의거 불법의 소지가 있다). 가끔은 '대표' 또는 '사장' 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는 제일 어색한 호칭 중에 하나이다. 물론 틀린 호칭은 아니지만,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아직도 대표나 사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연륜이나 경험 있는 회장님 이미지가 있는데 난 그런 위치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를 부르기에 적절한 단어가 딱 떠오르진 않는다. 그나마 '소장' 이나 '건축사' 라고 불리는게 가장 맞아 보이지만 그것도 정확히 딱 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인고 하니 그동안 거쳐왔던 사무실들의 소장님들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들 완벽히 모든 일을 수행하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각 자 자신이 가진 특별함을 충분히 발휘해 가면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소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질 수 있는 적절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인의 특별함, 인맥의 광범위함, 수주의 능력, 현상 설계 능력 등의 각자의 능력들이 무언가 하나씩은 특출나게 갈고 닦은 모습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건축사 자격증 취득하여 용감하게 독립했을 뿐인데, 그런 호칭을 들을 자격이 되나 하고 반문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만날 때마다 매번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모르는 일들이 가득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내가 가진 특별함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소장 또는 건축사의 호칭으로 불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사람들은 나를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겠지만 말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을 당당히 들을 수 있도록 조금씩 앞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나아가야겠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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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8

2022. 1. 17.

개업을 전후로 총 3번의 현상 공모에 응모했다.

직원으로 사무실을 다닐 때에는 현상 공모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좋지 않았다. 현상팀에 불려 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밤샘을 예약하는 것이었고, 일정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일량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일반 수주 업무 처럼 건축주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침서가 등불 같은 존재였지만 결국 윗사람들의 컨펌이 하나의 방향이 되었고, 직원들이 서로 안을 만들어서 으샤으샤 진행이 될 때쯤에는 어느새 소장이 나타나 리셋이 되기 일쑤였다. 이전 사무실에서 진행하던 현상 설계 안들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의견이 뒤범벅되어 어울리지 않는 성형 건축물이 되어 있었던 것은 별로 큰 일은 아니었다. 물론 결과가 좋지 않는 사무실만 근무했던 경험이라 좋은 결과를 내는 사무실들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현상 설계는 사무실 디자인 철학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당선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꾸준히 현상 설계에 참여하면서 프로젝트가 쌓이고, 하나의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나아가면 나중에 당선된 프로젝트도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당선되면 여러 미디어에 소개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또한 사무실 운영에서 고정적인 수입이 기대되지 않을 때 현상 공모는 매우 중요한 기회이다. 최소 1억 이상의 설계비가 책정된 공공 건축물들은 각 지자체에서 설계 용역의 일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장터에 2~3개월 후 제출 마감으로 두고선 올라오는데, 직원이 소수인 사무소들은 1~2건 정도만 당선되어도, 1년 이상은 살기 위한 수주는 하지 않아도 된다. 설계비가 모두 설계사무소의 몫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간 영역에서 알려지지 않은 영세한 사무소가 설계비 1억 이상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자리 잡는데에 좋은 기회가 된다. 비록 공공 건축물이기 때문에 각 종 인증 절차들과 보고서 작성등의 많은 업무량과 공사비 한계등의 압박이 있기는 하지만 큰 문제 요소는 아니다. 직전 사무실에서는 현상 설계에 당선된 프로젝트를 납품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량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늠할 수는 있었고, 실제로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무수히 많이 올라오는 나라 장터 현상 공고들 속에서 어떤 공모전을 응모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노하우가 필요했다. 보통 큰 지자체들은 별도의 전용 공모전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하며, 교육청은 학교들만 따로 관리하여 현상 설계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공모전들이 투명하게 운영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직도 지방이나 특정 영역에서는 카르텔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인맥도 로비도 암묵적으로 있다고는 한다.(확인된 바는 없다) 하나의 현상 설계를 제출하기까지 2~3개월은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하고, 마지막 제출 일주일에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공모전 선택을 위한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총괄 건축가가 있는 지역의 공모전을 우선한다. 지자체 마다 총괄 건축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대표적으로 파주시, 춘천시, 영주시, 진주시 같은 경우이다. 총괄 건축가가 있는 곳은 공공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이 있는 곳이며, 그에 따라 설계 공모 지침서가 작성된다. 명확한 의도가 있는 지역은 납득할만한 설계안을 당선시킬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둘째,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와 대학 교수들이 심사위원으로 많은 공모전은 피한다. 많은 건축가들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중에서 알려진 분들 1, 2명이라도 있는 곳으로 우선한다. 결국 당선안은 심사위원들이 만드는 것이고, 그들에게 다른 외부의 조건 없이 온전히 제출안을 가지고 판단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려진 분들은 그들의 작업물을 찾아보기도 쉽고 성향 파악하기도 쉽다. 알려지지 않은 분들과 대학 교수들도 좋은 안을 뽑을 수 있지만, 알려진 분들이 좋은 제출안을 당선 시켜 주리라는 믿음에 기대 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셋째, 지침서를 매우 꼼꼼히 본다. 몇 개의 공모전의 지침서를 보다 보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점점 대충 보게 된다. 하지만 지침서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가 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지침서는 앞,뒤 면적표가 계속 다른 면적이 적혀 있거나 필요없는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한다. 이는 담당 공무원이 지침을 만들 때 다른 지침서를 참고하여 만들면서 복사한 것들이 그대로 들어오기 때문인데, 이런 공모전은 우선 배제한다. 공모전 담당 공무원이 관심없는 공모전은 아무도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또한 설계비에 포함된 금액을 분석해보거나 제출물도 해당 공모전에서 필요하지 않는 요소까지 설계 설명서에 담으라고 해놓은 것들도 많이 발견된다. 지침서만 열심히 읽어봐도 참가하지 말아야 할 공모전은 걸러진다.
넷째, 설계비 4억 미만은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민간에서는 설계비 1억 받기가 힘들지만, 공공 영역에서 설계비 1억은 남는 금액이 얼마 없다. 각 인증 작업과 보고서 작업량을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1억 설계비나 4억 설계비나 면적의 차이만 있을 뿐 해야할 작업량은 비슷하다. 또한 당선 설계비가 높을수록 낙선하여도 등수에 오르면 의미있는 보상비를 받을 수 있다. 설계 제출안을 내기 위한 2~3개월도 인건비를 쓰고 있기 때문에 보상비로 인건비라도 건지려면 적어도 4억 이상은 되어야 기대를 할 수 있다. 물론 공모 프로젝트가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라면 설계비에 상관없이 참가해보려고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설계비 생각하지 않고 참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섯째, 프로그램을 정한다. 공공 건물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공공 청사부터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전시관, 박물관, 복합문화센터, 도서관, 경로당, 노인센터, 장애인센터등 무수히 많다. 나는 다양한 용도에 도전하기 보다는 몇몇 용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이 설계 노하우를 쌓아가는데에도 도움이 되고, 만약 당선되어서 지어졌을 때 포트폴리오에도 연속성을 가진 사무실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위의 조건들을 꼼꼼히 따진 결과 21년도에는 총 3개의 공모전에 응모했다.
처음 참가한 창원민주주의전당 건립 설계 공모에서는 비록 공식적인 결과는 낙선했지만 투표 결과를 열람했을 때 6위를 기록(5위까지 공식 결과)했다. 이어 참가한 진주 실크 박물관과 파주 문산 시립 도서관 설계 공모에서는 연달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지어진 것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사무실의 설계 제출안이 연달아 등수에 올라가고 있어서 고무적으로 생각하며, 22년에는 적어도 1, 2건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길 바래본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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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7

2021. 12. 7.

춘천 주택은 중요한 지점들이 있었다.
자연녹지지역은 건폐율 20%으로 제한되어 있는 곳이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80%의 외부 공간을 가지게 된다. 단독 주택을 지으면서 넓은 마당을 가지는 것이 당연히 좋지 않겠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 문제를 비롯하여 넓은 마당의 효율적이지 못한 사용성과 성격이 불분명한 공지를 계획하는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공간이 될 것이 자명했다. 무심히 자라고 있는 잡초들과의 싸움은 덤일지도 모른다.

20% MASS - 80% OUTSIDE SPACE

이 지점을 건축 의뢰인과 상의하면서 나는 외부 공간을 쓰임의 맞는 스케일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다. 대지는 충분히 여유로운 상황에서 나누어서 사용하여도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마당, 집 내부에서 쓰이는 마당, 전면 외부 마당으로 성격을 정의하고 3가지 mass type을 최종 제안했다. 여러가지 고민을 거친 후 중정을 가진 3번의 타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설계 과정은 순탄했다. 건축 의뢰인은 명확하게 주택에서 원하는 지점들이 있었고, 내가 제안하는 주택의 평면과 공간들을 대체로 만족해하셨다. 아직 디테일을 풀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전체 계획은 완성이 되었고, 도면 작성 및 인허가를 진행시켰다.

계획 완성한 춘천 해담은 주택

공사 예산과의 전쟁은 계획 완성 후 벌어질 예상된 문제였다. 보통 모든 프로젝트들이 예산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좀 더 문제점이 많았다. 원래 설계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지방의 하우징업체나 지역 부동산을 통해 소개받은 업체에서 집짓기를 진행하시려고 하던 건축 의뢰인은 그 회사들의 시공 견적을 표준으로 알고 계셨다. 어떻게 설계도 없는 집을 평당 단가로 설명하며 계약을 하고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단가는 내가 알고 있는 단가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거기에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자재값이 올랐다고 하고(특히 목재) 가견적을 받기 위해 몇 군데 시공사에 요청을 했지만 아예 공사 예산과는 맞지 않다며 견적조차 포기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단가가 많이 올라서 계약해두었던 프로젝트도 계약을 해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행히 두개의 시공업체가 견적까지 작업을 해주었고, 예상대로 건축 의뢰인의 예산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우선 하우징업체의 견적과 시공업체와의 단가 차이가 왜 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로서도 하우징업체가 어떻게 그런 견적을 가지고선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건축의뢰인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가지 의문점을 설명드렸다. 내역서가 공정별로 쪼개져 있지 않고 '식'의 개념으로 적힌 견적서로 중간 과정의 시공 방식과 재료가 어떤 프로세스인지 알 길이 없고, 마감이 된 후에는 내부에 어떤 재료가 어떻게 시공 되었는지 모르게 된다. 또한 가지고 있는 도면으로 시공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자재 백화점을 활용하여 실행 오차와 단가를 줄이는 방식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새로 설계한 설계사무소의 도면의 적응력이 어떨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현장 소장이 하나의 현장을 맡아 상주하지 않고,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인건비를 아낄텐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의 소통 능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등의 문제점을 말씀드렸다. 물론 내가 소개하거나 알아본 시공사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역서를 만들 수 있는 시공사와 진행해야 나중에 분쟁거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득이 시작되었다. 많은 토론과 이야기 끝에 시공 업체도 조금 양보하고 건축주도 예산을 더 확보하는 선에서 시공사 선정의 지리한 시간이 끝났다.

시공사 선정까지 끝낸 지금은 12월이 되었고, 겨울 공사를 피하기 위해서 착공은 내년 2월로 미뤄둔 상태이다. 그 사이에 도기, 타일, 수전 등의 상세 스펙을 정리하여 추가 금액의 오차범위를 최대한 좁혀 두고선 착공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조금 여유가 생겼기에 담장 디자인, 붙박이 장 디자인, 각 종 상세들을 스터디 하고, 모형도 만들어보면서 봄을 기다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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