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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2

2023. 2. 10.

춘천주택을 완공 후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presskit을 배포했다. 직접 촬영한 준공 이미지와 함께 간단한 설명글과 설계 의도를 서술해서 온라인 매체에 보냈고, 다행히 몇몇 온라인 매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준공 이미지와 사무소 이름을 실어주었다. 온라인 매체의 장점은 지면의 한도가 없다는 것과 SNS를 통하여 불특정 구독자에게 작업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맞추어 몇개 오프라인 잡지에서도 연락이 와서 출력물로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는지  우연히 잡지를 구매하여 보셨던 한 건축주께서 인연이 되어 새로운 주택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소를 처음 오픈했을 때 상상했던 운영방식이 하나의 건물이 완성되고 그 작업을 보고서 다음 작업이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였다. 운이 좋게도 때마침 중정형 주택을 꿈꾸시던 건축주께서 춘천 주택이 실린 잡지를 구매하여 보셨고, 설계를 맡겨주시는 인연이 되었다.

 

울산 대지는 울산시에서 조금 떨어진 언양읍에 위치하고 있다. 울산 ktx 정차역과 차로 10분 거리 남짓에 있는 대지는 도심지에서는 2~3분 거리에 있었고, 3~6m폭을 가진 현황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300 미터 정도 오르면 나타난다. 큰 하나의 필지로 이루어진 대지 일부에는 매화나무를 일정 간격으로 심어두셔서 그 부분은 최근에 과수원 지목으로 변경되어 평탄화 되어 있었다. 산의 중턱 쯤 골과 골 사이에 위치하여 양 옆으로는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고, 서남쪽으로 틔인 뷰로는 멀리 영축산과 신불산 자락이 구비구비 장관으로 펼쳐진 곳이었다. 

건축주는 자연이 좋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택으로서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동물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주택을 생각하며 중정형 주택을 꿈꾸고 계셨다. 자연이 좋다고 넓은 마당을 전면에 둔다는 것은 그만큼 안전에는 취약해지는 단점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선 계획을 시작했다. 전면에 펼쳐진 산맥의 장관과 매화나무 그리고 가족들이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폐쇄된 중정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 될 것 같다.

 

건축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어려운 자연적 조건들이 있는 대지가 더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대도시 지구단위계획에서 만들어진 정방형의 대지들도 그 나름대로의 조건들이 있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규칙에 따르면서 어떻게 원하는 주택을 구성할 수 있을지 재미있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 주택이 완성되면 작업을 보고 또다른 연락이 오게 되는 선순환의 작업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 방향을 향해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나의 무기가 되리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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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02

2022. 12. 22.

2022년이 끝나가는 12월이다. 올해는 여러모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참여한 공모전에서는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개인 프로젝트 수주도 하나도 못하였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에 휘말려 아직도 붕떠있는 외로운 섬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난 십년간 상하이에서 있는동안 이번해보다 어려운 날이 있었을까싶다.  외국에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었나? 외국인 디자이너로서 중국에서 어떤 고민들이 있어왔었는지 되돌아보게된다.

1.
디자이너로서 살아간다는 한국에서도 물론 쉽지 않은 길이지만, 외국에서는 한가지 능력이 더 요구된다. 단순히 영어가 아니라 언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한 전반적인 소통능력이다. 다른 모든 직종이 그러하겠지만 디자이너는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주니어에서 프로젝트 디자이너가 되고, 시니어 디자이너를 거쳐 아래 여려명을 거느린 디자인 팀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이에 발 맞추어 팀원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능력,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 현장에서 의견을 관철시키는 노하우, 공공을 대상으로한 강연의 장소에서의 프리젠테이션 등, 직급과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나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과정은 때론 디자인과정 그 자체보다 어렵다. 디자인이란 나를 위한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팔아야하는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2.
건축/인테리어에서 커리어는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프로젝트 매니져로도 나아갈수 있고, 도면과 법규적인 검토를 주로 하는 테크니컬 디렉터나, BIM이나 3D 모델링을 전문으로 나아갈수도 있으며, 비지니스를 관장하는 BD로 갈수있다. 다양한 길이 있고, 상황에 따라 혹은 역량에 따라 전환하여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현지언어를 못하는 외국인 디자이너는 주로 디자인으로만 한정하여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한계가 되어 다양한 길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3.
사람은 머무르는 환경과 교류하는 사람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무래도 와국애서의 생활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충돌하는것이다. 그들에겐 당연한것이 나에게 이상한 일이고, 나에게는 당연한것이 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기때문이다. 공간은 그 안에서 이용한 사람을 위한 것이니 당연하게도 사람과 문화가 다르다 보니 공간 또한 달라진다. 하지만 그것을 알일이 없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과 어려움이 좀더 성장할수 있는 토대가 되었던것은 아니겠나싶다.
다가올 2023년은 조금 더 희망이 보이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진지한 고민들과 결과물을 차분이 만들어가면서 칼을 갈고 있자. 날카로운 송곳은 어디에서든 삐져나오길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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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1

2022. 11. 2.

최근에는 학교 작업에 집중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고교학점제 사용자 참여설계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두 학교 중에 한 곳은 공간조성사업 외의 시설비용 3천만원을 올해 안에 사용해야 한다며 교실 1개를 우선 계획해달라고 했다. 무려 올해 안에 완공해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해당 교실은 공간조성사업에 포함하는 다른 교실들과 같은 복도를 공유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올해 공사를 하더라도 디자인 컨셉을 맞춰서  계획해야하는 것이 중요했다. 계획 내용은 일반 교실을 AI 창작실로 변경하고, 실 사이즈도 0.5칸 늘려야했다. 기존에 지어진 학교가 대부분 일정 모듈을 가지고 반복된 공간구성을 만들어내는 것에 착안하여 복도 벽을 300mm 단위 모듈로 나누어 문, 창과 벽 등으로 나누어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모듈들이 공간조성사업을 통해 다른 교실로 확대 되면서 같은 디자인 언어 계획을 가짐과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닐 수 있도록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재미있는 공간이 만들어질 것 같다. 인테리어 업무는 건축과는 또다른 디테일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건축에서도 10mm 때문에 고민하지만 인테리어에서의 10mm는 건축에서의 고민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실제로 시공할 때도 꼭 현장에 나가봐서 그 차이가 유의미한 차이인지 그저 나의 느낌의 차이인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인테리어도 건축처럼 디자인 해보고자 했으나 교장 선생님의 비경제적인 요소 배제라는 완강함으로 인해 설득의 실패로 끝났다. 자신만의 관점을 뚜렷히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것에는 아직 내 실력이 충분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환경개선에 초점을 맞추고선 공간조성사업 영역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서 다시 시도 해보려고 한다. 내심 마음 속으로의 불안감은 존재한다. 인테리어 업무를 거의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인의 공사비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정확히 안되기 때문이다. 재료와 시공법이 천차만별에다가 가격도 어떻게 계획하느냐에 따라 크게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레퍼런스 도면들의 퀄리티와 시공비가 적절한지 끊임없이 묻고 현장에 맞겠금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이것도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지식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오늘 글을 시작한건 이 블로그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라고 적혀 있지만, 한번씩은 다른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서이다. 이번에는 음악 이야기를 적어볼까 한다. (갑자기?)

나에게 다시 태어나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음악을 만들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음악을 부르는 사람이 참으로 부럽다. 나는 음악에 대한 재능은 없기에 헤비 리스너로서 하는 말이지만.

어렸을 적 부터 Rock kid 였던 나는 밴드 중심의 음악을 좋아하고 지금도 즐겨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일렉트로닉, 시티팝, 아이돌 음악까지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을 즐기지만 다른 장르를 듣다가 결국엔 다시 밴드 음악으로 돌아오곤 한다. 글과는 다르게 음악이라는 것은 때때로 현실을 살아가면서 사라진 몽글몽글한 그 때의 냄새와 분위기를 다시금 되살려주는 신기한 예술인 것 같다. 어릴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광팬인 radiohead의 노래가 가끔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올 때 마다 처음 들었던 앨범 kid A 의 놀라움이 되살아나곤 한다. r.a.t.m, mr.big, oasis, sigur ros, muse, deftones, linkinpark, r.h.c.p, korn, led zeppelin, nirvana, queen, yo la tango, 들국화, 산울림, 아폴로18, 언니네이발관, 트램폴린, 허클베리핀, 넬, 크라잉넛, 국카스텐 등 그 시절마다 들었던 음악들은 나에겐 여전히 살아있는 음악들이다. 물론 여전히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하는 밴드도 있지만, 요즘 대세 음악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활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이들 밴드 음악의 힘은 라이브에서 들어난다. 출중한 보컬이나 음악성이 뛰어난 공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들고 다시 어린 시절의 나에게로 되돌려 주는 음악은 라이브 밴드 공연만한 것이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길어졌다. 건축도 그러할 수 있을까. 

욕망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계획한 건물이나 공간에서 다른 공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자기만의 개인적인 느낌과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계획한 공간들의 아이덴디티가 될 수 있을까. 형태적으로 특이할 수도 있지만, 형태에 집중하기 보다는 빛의 흐름과 공기의 분위기 등이 만들어내는 경험을 주고 싶다. 그것이 라이브 밴드 공연에서 내가 느꼈던 rock 음악의 힘에 매력을 느낀 것과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느끼고 공감한 감정은 그 곳에 갔을 때 바로 되살아나는 것 처럼 말이다.

 

욕심만 내지말고 부단한 건축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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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10

2022. 9. 22.

최근에는 연달아 공모전에 낙선하면서 조금은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지내고 있다. 세세하게 따져보면, 운이 안좋은 경우도 있었고, 심사위원들의 생각하는 방향과 아예 달라 지지를 받지 못한 경우, 2차 발표 대상자인 5위안에 들지 못하고 1차 6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발표를 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까. 올해는 현상 공모, 제안 공모를 통틀어 6번 정도의 공모에 참여했다. 그 사이에 지역 공모의 카르텔을 느껴보기도 했고, 잘하시는 분들이 당선되는 것들을 보여 배움의 자세를 가지기도 했다. 꾸준함.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으면 좋은 성과가 나길 기대하면서, 올해 마지막에 마감하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민간일이 들어오지 않는 한, 올해는 1~2개 정도의 공모를 더 하게 될 것 같고 내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공모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작년에 시작한 첫 프로젝트인 주택이 6월 말 완공 되어 지루한 장마철을 보낸 뒤 7월 중순에 준공 사진을 직접 촬영하고 왔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촬영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학 때 사진 동아리 활동하며 사진을 찍어봤노라고 되뇌었지만, 그 동안 안찍은 세월도 있거니와 건축물 사진은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렇지만 설계하며 수없이 돌려봤던 3D를 기억삼아 그 때 좋아했던 건물의 각도와 의도했던 공간이 잘 들어날 수 있도록 사진을 찍었고, 프로사진사 사진에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는 어느정도 남길만한 사진을 담아왔다. 전문 프로 사진가들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첫 작업인 만큼 스스로 준공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던 욕심도 한 몫 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건축주는 신경 안쓰실 정도의 소소한 지점들이 스스로에게 아쉬운 것으로 보이고, 그 지점들을 짚어 보면서 또 한단계 발전하는 시간을 가진 듯 하다. 앞으로 준공 될 건물의 사진도 직접 찍을지 작가에게 맡길지는 그 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가에게 맡기더라도 개인적으로 간직할 사진을 직접 따로 촬영하려고 한다. 작가도 미처 알지 못한 나의 시선이 있고, 촬영하면서 깨닫는 여러 지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날 쯤에 건축주가 오셔서 바베큐와 함께 저녁시간을 가졌다. 몇가지 아쉬운 지점도 이야기 해주셨지만, 소소한 것들이라며 아주 만족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건축 설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집을 설계하고 지어지고, 그리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것보다 뿌듯한 일이 있을까. 건축주는 자신이 센스가 떨어진다며 건물의 디자인을 헤칠까봐 함부로 무엇을 못하신다고 하신다. 나의 디자인 의도를 찾아보시려고 하고 헤치지 않으시려고 생각해주셔서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이제는 건축주께서 자기만의 느낌이로 이 곳을 자유롭게 망가뜨려보시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나의 의도가 많았지만, 살아가시면서 자유롭게 꾸미고 붙이고 하면 그 때 온전히 건축주의 집이 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씀드렸다. 살아가는 사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해가는 집을 몇 년뒤에 보고 싶어 다시 초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날은 밝은 슈퍼문이 떠오른 밤이었다.

건물 촬영을 마치고는 사진 정리와 보정을 거친 뒤에 간단한 설명글과 함께 presskit을 만들어 다수의 국내외 온라인 매거진에 홍보차 보냈다. 다행히 에이플랫폼, 브리크매거진, 아키타이저 등에 작업이 게시물로 올라갔고, 사무실의 이름을 대중에게는 처음 선보일 수 있었다. 준공 작업들이 쌓이면 나의 작업들에서 신뢰를 받은 좋은 인연들이 맺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LH 청신호 건축가, 서울시교육청 꿈담 건축가, 경기도교육청 공간 기획가.

지금 맡고 있는 여러 역할들이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무소는 포트폴리오에 준공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력풀 리스트에 올라가 있더라도 다른 훌륭하신 이력을 가진 분들 사이에서 나에게까지 연락오는 일은 드물었다. 다행히 경기도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고교학점제 공간 기획 사업에서는 72개교 56명의 공간 기획가에게 계약의 기회를 열어주었고, 서울시 교육청과는 달리 학교와 직접 소통하여 계약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별다른 학교 작업이 없는 나로서는 가만히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라 집에서 가까운 몇 개 학교에 연락하여 젊은 에너지로 잘 진행해보겠다고 어필한 후 미팅을 진행했다. 다행히 좋게 봐주었던 탓일까, 2개 학교와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고, 올해 말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워크샵 등을 통해서 학교 공간 재구성을 진행하고, 잘 진행된다면 실시 설계와 디자인 감리를 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학교 작업등이 쌓이면 또 비슷한 사업을 진행 할 때는 좀 더 계약을 성사하기에 수월할거라 기대한다. 현장 미팅에서는 각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워크샵 등을 통해서 학생들과의 만남도 기대가 된다. 좋은 계획안으로 내가 맡은 학교들의 공간이 좀 더 풍부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학교 설계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내년 여름에는 준공 사진을 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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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9

2022. 5. 10.

 독립하고 나면 가장 어색한 단어는 나를 부르는 주위의 호칭이다. 

그동안 불렸던 호칭들을 되돌아 보면, 대형 사무실에서 '사원'이 시작점이었고, 아뜰리에 사무소로 옮긴 후에는 '대리' , '팀장' , '실장' , '미스터 박(?)' 을 오고 가며 사무실을 옮길 때 마다 매번 다르게 불렸다. 사무실 마다 직급의 체계가 있고 불리는 규칙이 있으니 그런 호칭은 어떻게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게 여러 호칭으로 불리다가 독립을 하고 나니 나의 직급은 명확치 않고 여러가지로 불려지고 있다.

 우선 거의 대부분은 나를 '소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건축사사무소'라는 명칭이 '소'로 끝나기 때문에 소장이 평범하게 불리는 듯 하다. 나도 대부분 아뜰리에 대표님들을 소장님이라고 지칭 했었고, 그것이 업계 표준 같은 인식이 있다. 두번째로 많이 불리는 명칭은 '건축사' 라는 명칭이다. 건축주분이나 공무원 또는 처음 만나는 일반 분들이 주로 건축사라고 나를 부르곤 한다. 건축사라는 자격증을 정확히 알지 못하시는 분이 대부분이나 설계사무소를 방문하면서 설계와 건축사의 존재를 이해하시고서는 비로소 아무개 건축사님 이라고 부르시곤 한다. 물론 그 중에 '건축가'로 부르시는 분도 계신다. '사'로 끝나느냐 '가'로 끝나느냐는 '사'는 자격을 가진 사람, '가'는 자격의 유무보단 디자인에 좀 더 집중하는 사람 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나는 그런 용어들이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 스스로 나는 건축가요 하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건축 설계 분야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건축'사'나 건축'가'나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법적으로는 '건축가'란 호칭은 건축사법 12조에 따라 유사명칭 사용금지 조항에 의거 불법의 소지가 있다). 가끔은 '대표' 또는 '사장' 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이는 제일 어색한 호칭 중에 하나이다. 물론 틀린 호칭은 아니지만,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다. 아직도 대표나 사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연륜이나 경험 있는 회장님 이미지가 있는데 난 그런 위치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를 부르기에 적절한 단어가 딱 떠오르진 않는다. 그나마 '소장' 이나 '건축사' 라고 불리는게 가장 맞아 보이지만 그것도 정확히 딱 떨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인고 하니 그동안 거쳐왔던 사무실들의 소장님들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들 완벽히 모든 일을 수행하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각 자 자신이 가진 특별함을 충분히 발휘해 가면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소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질 수 있는 적절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인의 특별함, 인맥의 광범위함, 수주의 능력, 현상 설계 능력 등의 각자의 능력들이 무언가 하나씩은 특출나게 갈고 닦은 모습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건축사 자격증 취득하여 용감하게 독립했을 뿐인데, 그런 호칭을 들을 자격이 되나 하고 반문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만날 때마다 매번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모르는 일들이 가득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내가 가진 특별함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소장 또는 건축사의 호칭으로 불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도 사람들은 나를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겠지만 말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을 당당히 들을 수 있도록 조금씩 앞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나아가야겠다.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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