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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축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03

2025. 1. 4.

공모전이라는 파도 -

1년 정도 한국에 머무르다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상해에 다시 온 것도 일 년쯤 되어가고, 다시 넘어올 때 생각한 2년이라는 시간 중에 절반을 지나왔다.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5건 내외로 공모전에 참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2-3달에 하나씩 마감하는 일정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나온 공모를 참여한다. 공모를 고르는 기준은 설계비가 충분하면서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분들이 있는 공모를 위주로 선택하고 있다. 최근 공공발주 설계공모가 많이 투명해지고 공정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찝찝한 결과 혹은 과정을 보이는 공모들이 있다. 때문에 공모전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를 하면서도 우리의 디자인 성향과 맞는 심사위원이 있는 공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보통 우리가 참여하는 공모는 참여자 수가 많다. 그러면서도 제출작의 수준이 높고 보고서의 완성도가 높은 안들과 경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25퍼센트 정도의 비율로 수상권에는 안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당선작 없음으로 처참한 결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해에는 공모전이라는 걸 잘 모르고 두려운 상태에서 도전하고 운 좋게 수상권에 들기도 했지만 그 뒤로 2년간은 아무런 수확도 없던 시기도 있었다. 특히 2023년은 더더욱 힘들었던 거 같다. 어떤 공모는 우리의 실수가 발목을 잡기도 했고 어떤 공모는 디자인의 방향성을 잘못 잡아간 적도 있지만, 투입된 시간과 반비례하는 결과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다시 한발 물러나 보기로 했다.  이제야 조금씩 설계 공모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거 같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20건이 넘는 공모를 진행하면서 어쩌면 조금씩 쌓아 올린, 건축으로 넘어가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 이제야 조금씩 의미 있는 몸짓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한국에서 그리고 건축에서 벗어나 있던 나에게 혹독한 수련의 시간이 되었다. 공공건축은 어떤 공간을,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대답도 조금씩 확립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투자되는 시간들이 사실 적은 편은 아니다. 공모초기에는 보통 하루에 3시간 정도를 할애하여 스터디를 한다. 진행 중일 때는 보통 오후 9시에서 새벽 2시까지 집중해서, 마감 때는 새벽 4시까지도 작업한다. 마감이 다가오면 모든 주말시간도 다 쏟아붓는다. 누군가에게는 설계공모가 부질없는 시간투자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일을 줄 고객이 아무도 없는 우리에게, 나에게는 유일한 희망의 줄기 같은 것이다.  이것을 잡고선 다시 건축이라는 세계로, 한국이라는 장소로 넘어가고 싶은 나의 희망들이다.

그렇기에 최근에 마감한 공모는 유독 시리다. 보통 마감한 후에 스스로 평가하는 시간들이 있다. 공모라는 것이 마감을 향해 달려갈 때는 안 자체에 매몰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제출 후에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친다면 본인은 이 안이 좋은 안인지 아닌지 대충은 알 수 있다. 이번에는 꽤나 좋은 기분이 들었다. 될 거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파도에 올라탈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당선이 된다면 시기적으로 너무 좋을 거 같았다. 여기서의 일도 끝낼 수 있고 집도 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 친한 친구도 마침 한국으로의 복귀를 준비 중이어서 한국에서의 주거지 문제도 고민의 크기도 덜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쉬움은 크지만 어쨌든 나의 선택과 우리의 합의에서 결정한 지점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잘 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저 멀리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처럼 공모전은 계속 밀려온다. 그중에 언젠가는 큰 파도에 올라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옮겨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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