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사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7

2021. 12. 7.

춘천 주택은 중요한 지점들이 있었다.
자연녹지지역은 건폐율 20%으로 제한되어 있는 곳이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80%의 외부 공간을 가지게 된다. 단독 주택을 지으면서 넓은 마당을 가지는 것이 당연히 좋지 않겠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 문제를 비롯하여 넓은 마당의 효율적이지 못한 사용성과 성격이 불분명한 공지를 계획하는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공간이 될 것이 자명했다. 무심히 자라고 있는 잡초들과의 싸움은 덤일지도 모른다.

20% MASS - 80% OUTSIDE SPACE

이 지점을 건축 의뢰인과 상의하면서 나는 외부 공간을 쓰임의 맞는 스케일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다. 대지는 충분히 여유로운 상황에서 나누어서 사용하여도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마당, 집 내부에서 쓰이는 마당, 전면 외부 마당으로 성격을 정의하고 3가지 mass type을 최종 제안했다. 여러가지 고민을 거친 후 중정을 가진 3번의 타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설계 과정은 순탄했다. 건축 의뢰인은 명확하게 주택에서 원하는 지점들이 있었고, 내가 제안하는 주택의 평면과 공간들을 대체로 만족해하셨다. 아직 디테일을 풀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전체 계획은 완성이 되었고, 도면 작성 및 인허가를 진행시켰다.

계획 완성한 춘천 해담은 주택

공사 예산과의 전쟁은 계획 완성 후 벌어질 예상된 문제였다. 보통 모든 프로젝트들이 예산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경우는 좀 더 문제점이 많았다. 원래 설계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지방의 하우징업체나 지역 부동산을 통해 소개받은 업체에서 집짓기를 진행하시려고 하던 건축 의뢰인은 그 회사들의 시공 견적을 표준으로 알고 계셨다. 어떻게 설계도 없는 집을 평당 단가로 설명하며 계약을 하고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단가는 내가 알고 있는 단가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컸다. 거기에다 코로나로 인하여 모든 자재값이 올랐다고 하고(특히 목재) 가견적을 받기 위해 몇 군데 시공사에 요청을 했지만 아예 공사 예산과는 맞지 않다며 견적조차 포기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단가가 많이 올라서 계약해두었던 프로젝트도 계약을 해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행히 두개의 시공업체가 견적까지 작업을 해주었고, 예상대로 건축 의뢰인의 예산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우선 하우징업체의 견적과 시공업체와의 단가 차이가 왜 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로서도 하우징업체가 어떻게 그런 견적을 가지고선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건축의뢰인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몇가지 의문점을 설명드렸다. 내역서가 공정별로 쪼개져 있지 않고 '식'의 개념으로 적힌 견적서로 중간 과정의 시공 방식과 재료가 어떤 프로세스인지 알 길이 없고, 마감이 된 후에는 내부에 어떤 재료가 어떻게 시공 되었는지 모르게 된다. 또한 가지고 있는 도면으로 시공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자재 백화점을 활용하여 실행 오차와 단가를 줄이는 방식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새로 설계한 설계사무소의 도면의 적응력이 어떨지 알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현장 소장이 하나의 현장을 맡아 상주하지 않고,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인건비를 아낄텐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의 소통 능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등의 문제점을 말씀드렸다. 물론 내가 소개하거나 알아본 시공사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역서를 만들 수 있는 시공사와 진행해야 나중에 분쟁거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득이 시작되었다. 많은 토론과 이야기 끝에 시공 업체도 조금 양보하고 건축주도 예산을 더 확보하는 선에서 시공사 선정의 지리한 시간이 끝났다.

시공사 선정까지 끝낸 지금은 12월이 되었고, 겨울 공사를 피하기 위해서 착공은 내년 2월로 미뤄둔 상태이다. 그 사이에 도기, 타일, 수전 등의 상세 스펙을 정리하여 추가 금액의 오차범위를 최대한 좁혀 두고선 착공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조금 여유가 생겼기에 담장 디자인, 붙박이 장 디자인, 각 종 상세들을 스터디 하고, 모형도 만들어보면서 봄을 기다리려고 한다.

uk

댓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6

2021. 9. 6.

당장 계약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사무실을 열어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없는 사무실 개업 준비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니 문득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설계 사무실 일들이라는 것이 여타 업종처럼 제품을 만들어두어서 팔거나 미리 사업 아이템을 팔 수 있는 직종이 아니고, 발주처 또는 건축주가 존재해야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디서 수주를 진행할 것인가가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설계사무실들의 최대 고민거리이다. 운이 좋다면 주변에서 일거리를 알아서 연락해주겠지만,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무척이나 유명한 프로필을 가지고 매체에 소개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처럼 이른 나이에 개업한 사람들의 고민 중 하나는 지인들이 아직 집을 짓거나 건물을 신축하기에도 이른 나이라는 점이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정도의 나이가 되어야 하고 있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사옥 신축을 하거나 은퇴 후 전원주택 생활을 꿈꾸거나 은퇴 생활비를 충당할 요량으로 상가를 신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30~40대의 친구들은 아직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직장에서의 벌이가 크든 작든 모아서 종잣돈을 만들기에 바쁘다. 그리고 그 돈을 불릴 고민이 가장 크기 때문에 과감히 주택이나 상가 신축에 투자하는 사람은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라는 것을 부풀리는 곳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삶의 공간 경험 가치로 변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런 분들과 작업을 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성격의 주택 설계가 우연히 진행되고 있다. 만들어진 작업이 없는 상황에서 준공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이다. 내가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지도 몰랐던 지인분께서 주택을 설계하고 싶은데 어디에 의뢰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통화를 하면서 주택을 지으려면 설계사 - 시공사 - 감리사 - 준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선 아주 흔쾌히 나에게 설계를 부탁하셨다. 첫 프로젝트니까 좋은 작업이 되길 부탁한다는 말씀과 함께. 

 

통화를 하고선 며칠 뒤 현장에서 만나 뵙기로 하고 춘천으로 달려갔다. 의뢰인은 젊은 부부와 아이 한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아이가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아파트에서 나와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셨다고 했다. 대지는 개발업체에서 일정 크기로 적당히 나눠놓은 소규모 주택 단지의 대지였다. 도심지와 멀지 않고 적당히 떨어져서 소음도 없고 무엇보다 앞의 풍경이 펼쳐져 있어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간단히 원하시는 집의 구조와 생활 패턴, 대지의 조건들을 공유하고선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유롭지 않은 공사비가 이 프로젝트의 최대 고민이 될 것 같다. 

주택이 들어설 춘천의 대지

 

누구에게나 새로 시작하는 것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건축주에게나 나에게나 이 프로젝트는 처음이기 때문에 서로의 설렘의 에너지가 잘 버무려져서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uk

댓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5

2021. 7. 8.


한 달 남짓,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무실을 구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무실을 전대했다. 사무소를 이미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직원도 한 명 있기도 하고 나보다는 훨씬 자금력에 여유가 있기에, 그 친구가 사무실을 구하는 곳에 한두 번 의견을 보태는 정도로 별다른 수고스러움 없이 사무실을 정하게 되었다. 각자 살고 있는 집에서 친구와 내가 적당히 출근할 수 있는 위치로 자연스럽게 신도림과 영등포가 후보로 떠올랐고, 결론적으로는 영등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영등포는 전철 타면서 스쳐 지나간 기억만 있는 지역이라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흥미로운 인상을 많이 받았다. 구도심의 흔적과 새로 개발된 구역의 경계가 아주 명확하면서도 금방 흐려지기 일쑤였다.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신세계 백화점과 영등포역까지 연결 통로는 어느 멋진 신도시처럼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지만, 바로 옆 블럭은 오래된 모텔과 음식점들 그리고 곧 영등포 시장으로 연결되며 임대가 붙어있는 건물들이 큰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죽어있는 도시는 아니라 타임스퀘어는 타임스퀘어대로, 영등포 시장은 시장대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영등포역에서 영등포시장역으로 걸어가는 코스가 주로 이용하게 되는 출근길이 될 것 같은데, 이 지역의 일상을 매일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기 마련이다.

두 번째, 대출 신청을 하다.
사무실을 계약하자마자 급했던 대출을 신청하러 갔다. 신용보증기금에 연락했더니 영등포지점을 알려줬고, 친절한 팀장님과 무사히 제출까진 완료했다. 커다란 사건은 없었지만, 만들어져 있는 양식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조업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식에 건축사사무소의 내용을 넣는다는 것. 입사 준비할 때부터 설계사무소들은 정해진 양식보다 각자 포트폴리오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빈칸이 무슨 내용을 채워야 하는지 블로그를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접수되었고, 지금은 승인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이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할지 자금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법인 승인을 받다.
대출을 신청하고 나니 신용보증기금에서는 법인 설립은 이제 진행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듣고선, 곧바로 법인 설립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세무서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서류 맞춰서 냈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신청과 설립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행정능력의 IT화는 정말 칭찬할 만하다 싶었다. 각 종 블로그에 설립에 관한 상세한 내용들이 잘 설명되어 있었고, 상담사에 연락하면 친절하게 아주 잘 알려주신다. 설립 신청하면서 무서웠던 점은, 신청 페이지에서 단계를 하나씩 진행하면서 임시저장을 할 수 있는데, 작성 중에 상담사가 전화가 걸려온 일이다. 순간 내가 신청을 잘못해버린 줄 알았지만, 상담사가 작성 중인 내용 중에 오류를 미리 발견해서 수정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이 모든 걸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걸 안 순간 임시 저장 버튼이 무서워 보였다. 아무튼 신청서 제출, 수수료 납부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에 법인 설립이 완료되었고, 등기부등본이 출력되었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으니 이제 잘 키워서 세상에 내어놓아야겠다. 이제 건축사사무소 개설신고, 사업자등록신고, 법인 통장 개설 등의 험난한 일들이 남았지만. 하나씩 되어가고 있음에 큰 걱정은 없이 지나가고 있다.

네 번째, 진행하던 공모전을 포기하다.
때때로 욕심이 과하면, 하나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직원으로 출근하지 않고, 회사 설립 준비를 하면서 그 사이에 공모전을 하나 진행하려고 했지만, 나도 생각보다 작업할 시간이 나질 않고 bm 역시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계약까지 성사되며 갑자기 다들 바빠졌다. 이 참에 제대로 사무실을 정리하고선 새로이 나오는 공모전을 진행하기로 했다.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 포기하게 되는 순간에는 진한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의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편히 접기로 했다. 연말에 마감하는 공모전을 생각해봐야겠다.

uk

댓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4

2021. 5. 27.

4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다니던 사무실의 업무를 종료했다. 맡아서 하던 프로젝트는 납품을 진행했고, 조달청 계약 심사를 거쳐 시공사가 정해지면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행히도 소장님께서 디자인 감리 진행시 프로젝트를 계속 함께 관리해줄 수 있냐고 먼저 물어봐주셔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흔쾌히 결정할 수 있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큰 스케일의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점, 계획 단계부터 실시까지 작성한 도면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들과 누락은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점, 독립하여 수입을 걱정하는 차에 고정적인 수입이 조금은 보장된다는 점, 일주일에 한 두번은 바람 쇠러 현장에 갈 수 있다는 점 등이 결정을 하는데 고민을 덜 수 있게금 하던 요인들 이었던 것 같다. 아마 한 두달은 지나야 착공에 들어갈 테니 그 만큼은 여유가 생긴 셈이다.

 

사무실을 그만둔지도 어느덧 한달이 지나가고 있다. 첫 주는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고, 그 다음주 부터는 가정의 달이니 하여 양가 부모님댁에 다녀오니 흐지부지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 움직여보자 싶었지만 몇가지 고민되는 지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대출이다.

자금의 문제는 언제나 눈앞에 닥쳐있기 마련이다. 당장 나에게는 퇴직금과 모아둔 돈으로 길어야 석달 남짓 버틸 돈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사무실을 그만두기 전에 알아본 대출은 건축사에게 대출이 가능한 신용보증기금을 통해서 받는 방법이었다. 사업자등록을 하기 전에 신청하는 예비창업보증제도인데, 이 보증을 받으려면 사무실은 얻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우선 신용보증기금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사무실을 찾기로 한다. 대출보다 급한건 사무실이었다.

 

건축사사무소는 주택에서는 사무소등록신고를 할 수가 없다. 다른 업종들은 자가 주택에서 시작하기도 하는데, 설계사무소는 제약이 많다. 어쩔 수 없이 근린생활시설의 사무실 임대를 알아봐야한다. 사무실의 종류는 많다. 일반적인 임대 사무실에서 공유오피스, 가상 오피스까지. 대출을 받으려면 가상 오피스는 실사가 불가능 하니 제외하고 임대 사무실 또는 공유 오피스를 알아봐야 한다. 매달 나가는 비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앞선다. 고정비를 줄이고 싶은데 사무실을 얻으면 초기 사무실 비용, 월세, 프린트임대, 인터넷 등등 나갈 돈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망설이고 있던 찰나 예전부터 사무실을 운영하던 친구가 이번에 새로 사무실을 얻는다고 하여 그곳에 책상 하나 놓고 같이 사무실을 쉐어해보기로 한다. 다만, 6월 말에서 7월에 사무실을 얻을 계획이라고 하니 한달 정도는 사업자 없이 사람들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마냥 놀 수만은 없지 않는가. 같이 사무실 쓰자던 친구가 짧은 인테리어일을 함께 하자하여 잠깐 진행하고 있다. 내가 수주한 프로젝트라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진행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퇴사하기 전에 접수해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에 사람도 만나고 중간 중간 쉬기도 하면서 지내볼 생각이다. 벌써 몇 달의 스케쥴이 정해진 것 같아서 우선 조금은 불안했던 생각이 멈추었다. 

 

uk

댓글

비건축으로 독립생존기 2

2021. 3. 31.

간간히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굉장한 부지런함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1편을 쓴지도 2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좀 더 자주 글을 쓰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반성하며, 두번째 이야길 해보려 한다.

나의 첫 건축사 시험은 2017년도에 시작했고, 그 해 9월 응시. 결론적으로는 모든 과목에 낙방했다. 회사와 병행하는 공부는 처음이었고 시간의 어려움을 변명 하고 싶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도 많기에 그건 부끄럽다. 아무튼 그 이듬해부터 1과목씩 합격하여 2020년 1회 시험 3교시 합격을 마지막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합격자들 대부분 이야기 하지만 홀가분함과 기분 좋음은 일주일 정도가 전부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의사,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등 많은 '사'가 붙어있는 자격증들 중에서 건축사가 나에게 가져올 이득은 앞의 직업군들 보다는 훨씬 미천하다. 결론적으로는 독립을 하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일에 지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구나.

첫번째로 정리 할 일은 직장에서 어디까지 지식과 경험을 얻고 독립을 할 것인가 였다. 누구는 좀 더 디테일이 있는 사무실에 다녀서 내실을 다진 후에, 누구는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 한 후에, 누구는 계약되는 프로젝트가 생긴 뒤에, 누구는 경영하는 법을 좀 더 익힌 후에 독립을 하겠다고 했다. 난 그 생각들과 반대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물론 모든 것들을 갖추고 시작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60대가 되어도 독립하지 못할 것 같다. 몇 년전에 남미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는 결혼도 하기 전, 직장도 그만두고 떠날 수 있었던 그 일을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많은 것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 땐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과장 팀장 5년보다 소장 1년이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하지 않나. 다만, 그렇다고 무턱대로 다니고 있는 사무실을 그만 둘 수 없으니 자금 마련과 독립 준비의 기간으로 삼고 1년직 계약직을 찾아 이직을 하게 된다. 계약직은 그만두기에 용이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혹시나 더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까봐 애초에 기간을 정해놓기로 한다. 이제 4월이면 1년이 되는 기간이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닌 진행 되는 일들을 여기에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번째로 정해야 할 일은 사무실의 큰 방향과 내가 하고 싶은 운영계획이다. 이 부분은 오래동안 생각한 것들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음 글에 천천히 하나씩 적어보도록 하겠다.

uk


댓글